이창수의 포토 에세이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매주 일요일 『중앙SUNDAY』에 실리는 연재 글을 읽으면서 뭉클한 적이 여러 날이었다.

생기 있는 사진에 눈을 뺏겼다가 세상을 살피는 지각과 감수성이 담긴 한 줄 한 줄,

손바닥만 한 에세이에서 그런 울림을 읽었다.

 

그저 독자로서도 충분했는데,

지리산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사진가가 모던한 사각 집에 산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풀 우거진 산등성이와 네모난 철집의 언밸런스한 매치, 그 특이한 외관,

멋진 그림이 궁금해 하동군 악양면으로 갔다.

 

 

이창수가(家)의 지리산 히스토리
『월간중앙』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던 10년 전, 선생은 하동군 화개면에 월세 7만원짜리 방을 한 칸 얻었다.

남쪽 어디께로 출장을 오면 꼭 화개까지 와서 머물렀고, 봄이 오면 녹차 일을 했다.

 

무지렁이를 누가 써주더냐 했더니 차 철에는 일이 많아 고양이 손이라도 내주면 고마워한다는 대답이다.

그렇게 귀농을 위해 차 농사를 배우고, 사람을 사귀며 시골에 살 준비를 하였다.

서정적인 글을 쓰는 사람의 귀농 과정은 예상외로 철저하고 체계적이었다.

 

결국 지리산의 십 리 벚꽃길이 좋아, 매화 맛에 반해 이리로 온 것이 아니고,

취재하며 팔도를 다녀보니 농사 중에는 그나마 녹차가 수월할 것 같아 지리산,

그중에서도 제일가는 화개로 온 것이다.

 

그러고는 정작 화개의 이웃 동네인 악양에 살림집을 구했다.

월세 방을 얻어 다니며 지낸 1년 동안 화개의 빼어나게 멋진 풍광에 반해 눈을 붉히고 살 터를 찾았으나

조금 지나니 화개에 있을 이유가 없음을 깨달아서다.

 

화개 옆 동네 악양은 풍성하고 여유로워 살기에 더 낫고, 땅값도 화개보다 덜 나가고,

화개야 악양에서 차로 금방이니 아쉬울 것이 없었다.

 

그렇게 서울에서 나고 자라 살던 이창수·안경임 부부는 사십 줄에 악양에 내려와서 10년째 잘 살고 있다.

 

1

옥상에서 바라본 전망. 가드 역시 심플한 철선이다.

항아리는 장독이 아니라 오래된 한국 것을 좋아하는 부부의 수집품을 멋 부려 세팅 한 것.
2

해발 40m 높이 산중턱이라 전깃줄에 매달리지 않는 한 집의 전면을 보여줄 길이 없다.
3

내실과 손님방 사이를 띄운 이유는 그 사이로 보이는 전망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집주인 이창수씨와 풍산개 다산이. 총명하다는 주인의 말대로 말귀를 알아듣고 포즈를 취한다.

 

 

 모던 농가 주택
절집보다 윗집, 산중턱에 떡 자리 잡은 집은 들은 대로 현대적이고 거슬릴 것이 없는 전망에 속이 후련했다.

도시의 여느 주택처럼 현관으로 가는 길목에 징검다리 디딤돌을 놓고,

공작단풍, 백일홍, 로즈마리를 잘 심어 간수해 두었다.

 

외관은 붉은색 철판, 절제된 직선 라인의 주택은 상자 2개 놓고 가운데를 이은 단순한 모습이다.

집주인은 나중에 집이 어떤 용도로 쓰이든 활용하기 좋도록 통으로 지었고, 오래 살아도 손이많이 가지않도록

흙이나 나무 집이 아닌 철판 소재를 택했다고 했다.

 

집주인 이창수 씨와 풍산개 다산이.

총명하다는 주인의 말대로 말귀를 알아듣고 포즈를 취한다.

전면 미닫이문이 잠자는 방. 누우면 벽에 난 긴 창으로 매화가 보인다.

아내 안경임 씨가 집 짓는 친구들에게 꼭 추천한다는 바로 불 때는 방이다.

 

 

 

그래서 집은 잠자는 방과 공부방 외에는 파티션 없이 탁 트인 형태다.

안주인은 이 집을 지을 때 생활적인 훈수를 뒀다. 앞쪽은 모두 통창을 내서 볕이 잘 들게 하고,

불 때는 방은 꼭 만들고, 그 덕에 생긴 실내 툇마루에는 전기 패널을 깔았다.

 

데크에는 수도를 뽑아 마당 화초들에게 물 주기 좋도록 하고,

농사일을 하자면 몸에 흙이 묻으니 욕실 문을 바깥에서 바로 통하도록 냈다.

이 사각 집이 폼만 재려는 디자인이 아니었던 것.

 

 

 

1

침실에 딸린 벽장. 유리를 섞어 끼워 만든 창호지 문은 살펴보면 덧문이 대어진 이중구조다.

겉의 문을 위로 밀어 장 속을 살필 수 있다. 이 예사롭지 않은 문은 일본대사관이 리뉴얼할 때

우연히 주워 10년을 보관했다가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주었다.
2

은행나무 뒤주, 떡판,

20년 전 결혼하던 때 맞춘 책꽂이 등 생활 가구에도 나무와 골동을 좋아하는 취향이 담겨 있다.

전기 패널이 시공된 툇마루는 본래 폭이 좁았는데 겨울을 한 해 보내고 너무 추워서 앞으로 더 냈다고 한다.

 

 

 

중정다원과 지리산 학교, 악양골의 차진 생활
봄 녹차, 여름 매실, 가을 대봉감, 겨울 곶감. 사철 농사 스케줄이 꽉 차 있다.

가장 쉬울 것 같아 고른 녹차 농사가 힘들기로 치자면 최고라니 재밌다.

 

그래서 벚꽃만 피면 그 꽃이 지면 녹차 철이 온다는 생각에 긴장부터 된다.

4~6월 차 농사철이면 끼니를 예사로 거르고, 낮 동안 딴 녹차를 받아서 300℃ 넘는 솥에서

자정이 넘도록 덖는 것은 보통이라고 털어놓는다.

 

차 농사를 무지 크게 하나 싶었더니 그게 아니라 녹차는 딴 날 바로 덖어야 하기 때문.

게다가 녹차를 덖을 때는 그냥저냥 젓는 것이 아니라 손맛이 중요해서 기술있는 남편이 도맡아 하고,

아내는 항시 보조 역할이라는데 이 보조도 말만 그렇지 보통 일이 아니다.

 

남편이 300℃에서 덖어낸 것을 100~200℃에서 1시간 동안 맛내기 작업을 하고,

이 찻잎을 집게로 하나하나 집어 1통을 만들기에 1시간이면 겨우 2통을 포장한다.

이렇게 만든 녹차 브랜드(?)가 ‘중정다원’으로, 다도에서 말하는 차와 물이

어울리는 ‘중정의 묘’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손님을 맞는 응접실에 아내의 퀼트 천과 남편의 사진이 어우러져 있다.

오른쪽 3층 농은 일제시대의 가죽나무 장. 순천 골동품 가게에서 남편이 퀼트장 하라고

몇만원 주고 사와서는 켜켜이 쌓인 먼지를 3박4일간 닦고 분해해서 다시 조립했다.

 

 

 

이들 부부는 겨우 2백~3백 통만 만들어 알음알음 판매를 했는데

아내는 요즘 모르는 이들이 남편의 사진 에세이가 담긴 사이트(www.insidephoto.kr)로 들어와

주문을 해서 1~2개씩 택배를 부치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이 바쁜 와중에 남편은 지역 대학에서 사진 강의를 하고, 아내는 10년 취미인 퀼트가 좋아 바느질 카페를 열었다.

사진기자 남편과 초등학교 교사 아내, 시골 살면서도 본업을 하자고 들면

하고도 남을 부러운 직업들인데 굳이 땅 맛을 보겠다고

사철을 꽉 채워 농사짓는 것도 대단했는데, 이들은 올봄에 일을 또 하나 벌였다.

 

시골문화학교(cafe.daum.net/jirisanartschool)의 선생님이 된 것.

이름도 정다운 ‘지리산학교’는 악양 언저리의 예술가들이 모여 문을 연 산촌의 문화센터인 셈인다.

남편은 사진반을 맡은 교장 선생님, 아내는 퀼트반 선생님이다.

 

학교는 공예, 도자기, 시 등 과목 구색도 화려하다.

한가로이 산과 들을 맛보며 사는 줄 알았다 하니 시골에 살면 꽃이 피고 지는 것뿐 아니라

어제와 오늘, 매일매일의 변화를 보느라 너무너무 분주하다는 자랑이다.  

 

귀농해서 잘 살려거든
지금 집은 지리산 생활을 시작한 후 두 번째 집이다.

처음 내려와서는 마을 한가운데 보통 시골집에서 5년을 살았다.

그는 서울에서 지리산으로 내려올때 마을에서 떨어진 곳으로 갈지 사람들이 모여 사는데로 갈지 고민을 했다고한다.

 

외딴 곳으로 가면 아내가 쓸쓸해할 것도 같고,

마을로 가면 토박이와 낯선 외지인 사이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걱정되었다.

보통 도시 사람들이 시골로 내려오면 마을과 좀 떨어진 곳에다 집을 짓고 호젓하게 살 생각만 하는데,

그러면 도회지 아파트에서 현관문 닫고 사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인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박힌 돌 옆에서 머물며 시골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로 결정했는데

살아보니 끊임없이 현지인들의 입장을 알고 맞춰 살아갈 줄 아는 것이 귀농에 성공하는 키워드라고 말한다.

 

 

 본래 트여 있던 공간인데

화초들의 겨울나기를 위해 난로를 놓고 섀시를 달아 온실이 되었다.

 

 

 

또 한 가지, 어느 집에나 귀농의 걸림돌이 되는 아내 설득하는 법도 귀띔한다.

그는 어떻게든 3년을 버티면 그 이후에는 이 생활에 적응해 떠나자 해도 안 갈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 3년을 약속하고 내려왔고, 와서는 일부러 농사일은 조금만 하고 여수로 회 먹으러 가고

화개로 꽃구경 가면서 시골 생활의 달콤함을 맛보이며 워밍업을 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아내가 말하는 꼬임에 넘어간 결정적인 이유는 남편의 성실한 모습이라고 한다.

남편은 워낙 한 번 정하면 정한 대로 행하는 성격이고, 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

옆에서 찡얼거리기는 했지만 올라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는 초가을, 산골은 새벽녘이면 솜옷을 꺼내 입어야 할 만큼 춥다.

아내 안경임 씨는 요즘 이른 아침 찬 공기를 들이마시는 기분이 정말 좋다며

폐포까지 깨우는 찬공기 각성제를 자랑한다.

 

이창수 씨에게는 물어보나마나 날마다 좋기만 할 게다.

10월 8일에는 성곡미술관에서 지리산을 주제로 한 사진 전시를 하고, 비슷한 시기에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을 담은 에세이집을 출간한다.

늘 행복이 차고 넘치지 않으면 이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잖은가.


 

1

돌담에 끼워둔 퀼트 카페로 가는 표지. 악양은 돌이 유명해 유실수가 맛있다고 한다.
2

초창기 마을 한가운데 살던 시절의 집. 현재는 퀼트 카페이자 지리산학교로 쓰고 있다.
3

사진가 이창수 씨의 집은 곳곳에서 생동감 있는 지리산을 만날 수 있다.